<바르셀로나 가우디 투어 준비 1편>, 예약 했다고 끝이 아니다 본문
가우디 투어 또는 가우디 버스 투어를 예약한 당신을 위한 포스팅!
예약만 하면 딱 하고 끝나는 줄 아셨죠?
저도 그랬답니다.
하지만, 사람이 아는만큼 보인다고
아무런 정보없이 그냥가서 들으면 스쳐 지나가는 정보들이 많더군요.
미리미리 어느정도는 공부해놓고 가야 그 진정한 가치를 느낄수 있다고 생각이들었습니다.
그래서 준비한 가우디 투어 준비 1편. <가우디의 탄생과 초기 작품들> 시작해볼까요?
가우디에 대해 설명이 잘 되어있는 동영상이 있어 먼저 보시면 이해에 도움이 되실겁니다.
가우디의 풀 네임은 안토니 가우디 이 이코르넷(Antoni Gaudi y Cornet, 1852.6.25~1926.6.10, 스페인) 입니다.
가우디와 이코르넷의 아들 안토니 라는 뜻으로 실제이름은 가우디가 아니라 안토니(앤써니)가 맞습니다.
여튼 실제와는 상관없이 여러분의 이해와 편의를 위해 <가우디> 라고 부르기로 하겠습니다.
가우디는 카탈루냐(Catalunya) 지방의 작은 시골마을인 레우스(Reus)에서 태어났습니다.
(뭐 기록에 따라 레우스가 아니라는 말도 있기는 하지만 공식적인 기록에는 레우스 출신으로 나와있다고 합니다.)
레우스에는 도마뱀과 야자수가 많았고 가우디는 그것들을 관찰하며 자라왔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은 실제로 이후 그의 건축물에서 표현되었습니다. (ex> 구엘공원의 도마뱀, 구엘공원과 까사 비센스의 야자수 잎모양 철제 담장, 사그라다 파밀리아 입구의 야자수 잎 모양 장식 등)
가우디는 어렸을 적 폐병과 류머티즘을 앓아서 건강이 좋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어머니는 그를 극진히 보살폈고, 가우디도 그것을 알고 건강관리에 힘썼다고 전해집니다.
가우디가 남들보다 몸이 좋지못하니 같이 뛰어놀지도 못했습니다
그 덕택인지 오히려 그는 자신주변의 자연환경을 더욱 깊이 탐구할 시간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자연을 너무나도 사랑했고 그의 모든 건축물에서 <자연> 을 찾아볼수 있습니다. (투어를 하면서 직접 찾아보세요!)
그는 자연에 대한 경외심과 동경을 이런 말로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나는 꽃, 포도나무, 올리브나무들로 둘러싸인 곳에서 닭 울음소리, 새들의 지저귐, 곤충들의 날개소리를 들으며 산을 바라본다. 그리고 나의 영원한 스승인 자연의 순수함을 통해서 상쾌한 이미지를 얻는다' - 안토니 가우디-
그의 아버지는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아들들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아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가우디가 16살이 되던해에 의사인 형과 함께 바르셀로나로 유학을 보냅니다.
당시 바르셀로나는 카탈루냐 지방의 중심도시였고 중세의 건물들과 당대의 건물이 어울러진 도시로서 건축학도로는 더할나위 없이 배울것이 많은 곳 이었습니다.
그런 바르셀로나에서 가우디는 <바르셀로나 건축학교> 를 다니게 됩니다.
바르셀로나 건축학교 건축학과장은 가우디를 무척이나 싫어했다고 전해집니다.
아마 가우디의 기이한 형태의 건축관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건축학과장님과 가우디 사이엔 유명한 일화가 있는데, 졸업을 하게된 가우디에게 졸업장을 주며 학과장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졸업장을 미치광이에게 주는 건지 천재에게 주는 건지 누가 알겠나. 시간이 말해 주겠지.”
그말이 씨가 된 걸까요?
시간이 지나 오늘날에 와서는 가우디는 천재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학과장이 사람하나는 제대로 보았네요.
가우디는 바르셀로나 카페에서 벌여지는 사교모임에도 참여했었습니다.
가우디 나름대로 사교모임에서 열심히 참여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그때에도 건축업무를 따내려면 인맥이 있어야 했다는 것을 알수 있는 부분이죠.
(역시 사람이 능력만 있어서 성공할 수 있는건 아닌가 봅니다.)
사교모임 덕분 이었을까요? 그는 바르셀로나 시의 가로등을 만드는 일을 따냅니다.
하늘의 메세지를 뜻하는 헤르메스의 날개, 땅의 이야기를 전한다는 의미의 뱀 형상이 꼭대기에 장식되어 있습니다.
하늘의 메세지를 지상에 널리널리 퍼뜨리자 라는 <종교> 적 의미가 담겨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가로등
라이알광장에 2개를 제외하곤 시내에서 찾아보기가 힘듭니다.
(몇개가 다른곳에 더있다고 들었는데 기억이 나질 않네요 죄송합니다. 바르셀로네타해변 or 몬세라트 였던거 같긴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냐 하면, 그 당시 가로등은 가스불로 켰었는데
6개나되는 등을 가스불로 키는 것은 손이 많이 갔습니다.
게다가 장식이나 모양이 특이해서 만드는데에도 돈이 많이들었습니다.
한마디로 경제적이지 못했다는 얘기죠.
결국 상용화되지는 못했습니다.
이후 가우디는 <까사 비센스> 를 작업하기 시작합니다.
가우디의 건축물은 1890년도를 기점을 초기와 후기로 나눌 수 있습니다.
까사 비센스의 경우 1883년에 공사에 들어갔으므로 초기작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초기작품은 후기작품과 다르게 직선과 묵직한 풍채를 특징으로 합니다. (여러분도 사진속에서 느껴지시나요? 아마 후기작품과 비교하시면 확연히 보이실 겁니다)
당시 집주인이자 의뢰인인 비센스씨는 타일공장 사장님 이었는데요.
덕분에 타일을 마음껏 쓸수있어서 가우디는 즐거운 마음으로 작업을 했다고합니다.
타일을 너무너무 많이쓰고 짓다 부쉈다를 반복해서 비센스씨가 망했다는 농담반 진담반 인 이야기도 전해진다고 합니다.
(참고로 까사 비센스는 474억의 경매가로 거래가 된 기록이 있다고합니다. 정말 어마어마한 가격이죠~)
가우디는 까사 비센스를 짓는 시절부터 자신의 건축에 대한 신념 세가지를 확립합니다.
바로 <자연>, <곡선>, <종교> 입니다.
(앞서서 굵은 글씨로 표현했던 것들이죠)
금잔화 모양의 타일과 야자수 잎모양의 철제 담장을 통해 <자연> 을 담았고
(가우디가 금잔화 모양의 타일을 사용한 이유는 원래 그자리에 있던 금잔화를 베어야만 했는데 그것이 너무나도 안타까워했기 때문이랍니다.)
<곡선>은 테라스의 형태에서, <종교>는 건물 앞 묵주알을 풀어놓은 돌장식에서 나타납니다.
2017년 7월 현제 까사 비센스는 '보수공사중' 이므로 내부 입장은 불가능하고 외부에도 건물모양 천막이 둘러 있어 자세한 모습을 관찰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올해 10월(2017년 10월) 건물주가 공사를 마치고 건물을 공개할 예정이라고 하니 시기를 맞추어 관람해보면 좋을것 같네요!
<가우디의 후기 작품> 에 관해서는 다음포스팅에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Adios!